
🦔 뉴니커! 팜팜이는 하마터면 돌잔치를 하지 못할 뻔했는데요,, 팜팜이네 집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기 때문이죠! 어라라? 팔로워 좀 늘었다고 갑자기 개인적인 얘기를 시작하는 팜팜이?!
이건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겪었던 얘기인데 바로,, IMF예요! IMF와 돌잔치가 겹쳤다는 사실! (사실상 공개된 팜팜이의 나이에 술렁거리는 장내 👥👤👥👤뭐야...👤👤👥👥👥웅👥성👥👥👤가만있자...👤👥👤👤...(웅성웅성)👤👥👥👤...(웅)(성)👥👥👤👤👥👤👥👥👤..)
🪨 팜팜이 돌잔치 담당 일진, IMF
팜팜이의 돌잔치를 막을 뻔했던 바로 그 사건, 우리가 보통 'IMF 사태'라고 부르는 사건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이에요. 팜팜이도 어릴 때는 그냥 'IMF 사태'라고만 알았어서 "이 나쁜 IMF 놈들이 우리나라를 거덜내고 있다!! 😡"라고 잘못 생각했던 적도 있습죠 ㅎㅅㅎ 우리나라가 IMF에게 달러를 빌려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달러로 된 자산보다 달러로 된 빚이 더 많았기 때문이에요. 즉, 🔎 외채위기가 발생한 것이죠.
🔎 외채위기(Debt Crisis)
한 나라가 다른 나라 통화로 된 빚을 갚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해요. 비슷한 말로는 외환위기(Currency Crisis)가 있죠. 이는 한 나라의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 나라 경제가 위험해 보이니, 이 나라가 망한다에 돈을 걸겠어!! 💸") 때문에 통화 가치가 폭락하는 상태를 의미하죠.
물론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요! (외채위기가 외환위기를 촉발하는 경우가 쪼~~끔 더 많아요. 나라가 빚을 못 갚을 것 같으면 그 나라의 통화는 당연히 폭락하겠죠 📉)
IMF 외환위기 타임라인의 사실상 시작인 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공식 결정했다고 발표했어요. 다음날 조선일보 1면에는 이에 관한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죠.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요. 우리나라가 망할 위기에 놓여 다른 나라에 손을 벌리는 모양이니 말이죠 🥺 우리나라는 이렇게 IMF의 210억 달러를 시작으로 세계은행으로부터 100억 달러, 7개의 선진국들로부터 200억 달러 등 총 5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이 덕분에 국가 부도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어요. 하지만 돈을 빌려준 것이지, 그냥 거저 준 것이 아니죠?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 허리띠를 졸라 매고 달러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어요.
빚을 갚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자금을 지원했던 IMF는 달러를 빌려주며 다음과 같은 여러 경제 개혁 조치를 요구해서 국민들의 어려움은 더 커졌어요:
- 📈 고금리 유지: 원화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렸어요. 금리가 10%p 인상될 경우 원화 가치가 25% 정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죠. 하지만 금리가 높다는 것은 곧,,? 기업과 가계의 대출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해요.
- 🥋 긴축 재정 정책: 정부는 재정 지출을 줄여 건전성을 확보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했어요. 공공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이 발생했고 복지예산이 삭감되었죠.
- 📦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앞서 말한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에 더해 민간부문에서도 구조조정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났어요.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직원들이 해고되고 방만한 경영을 한 대기업은 퇴출되었죠.
"아니 우리나라 안 그래도 힘든데 IMF 이거이거 양아치 아니냐!! 🤬"라고 생각하셨나요? 팜팜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는 필요악이랄까요. 경제의 기초체력이 너무도 약해진 우리나라에 이러한 조치는 꼭 필요했어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였죠. 우리나라에만 특별히 가해진 조치가 아니고 아주 표준적인 위기 대응 방식이었답니다.
그나저나 IMF 외환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 모아요 모아 금을 모아
뭐니 뭐니 해도 바로 '금 모으기 운동'이죠! 이는 1997년 12월 1일 새마을부녀회가 제안한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퍼져나갔어요.
1907년 일본은 대한제국에 강제로 1,300만 원을 빌려주어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했는데요, 당시 우리 민족은 이를 갚기 위해 금연, 반찬 줄이기, 머리카락 자르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했어요. 일본의 방해로 결국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 규모의 국민모금운동이었고, 2017년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은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여 일어난 것이죠.
금모으기 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헌납식에만 금 대상국 2445돈, 은 133돈 등 총 1억 3천만 원가량이 모였어요. 최종적으로 총 350만여 명이 참여해 당시 시세로 21억 7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돈이 모였죠. 2017년 KDI에서 실시된 '20년 전 외환위기 조기 극복 원동력'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국민 단합'이 과반의 응답을 얻었어요.
그럼 이제 알아봐야겠죠, 어째서 우리 국민들이 이런 피나는 노력을 하게(해야만) 됐는지. 어째서 우리나라는 달러를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지.
🇰🇷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이 땅에 등장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6·25 전쟁을 겪었고 상황은 더욱 처참해졌어요. 세계 각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라였죠. 그런데 우리나라, 여전히 세계 최빈국인가요?
아니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1995년에는 세계은행의 원조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되었어요. 2009년에는 OECD 산하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들어가며 국제기구에 의해 공식적으로 원조 공여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죠. 지원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가 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된 거예요!! 🇰🇷
'잘 살아보겠다'는 국민들의 의지,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 기업가 정신과 더불어 정부가 주도적으로 펼친 '수출 주도 산업화 정책' 덕분이었어요:
- 🇰🇷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박정희 정부 시기부터 국가는 경제를 직접 설계했어요. 철강, 조선 등 중화학 공업을 집중 육성했고, 이를 위해 정부가 금융을 통제하면서 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 📦 수출 주도형 성장 전략: 내수 시장이 작아서 수출이 필수적이었어요. 정부는 수출 장려 정책을 펼치며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도록 유도했죠.
- 🏢 대기업(재벌) 중심 경제 구조: 삼성, 현대, 럭키금성(현 LG) 같은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웠어요. 정부가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고 세금을 깎아주면서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죠. 이런 정책 덕분에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가 형성되었고 지금까지도 한국 경제의 큰 특징으로 남아 있어요.
- ⚖️ 사회적 희생: 정부가 주도적으로 임금 상승을 억제해서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했고 국민들은 "잘 살아보세" 정신으로 헌신했어요.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았죠?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해 외화를 벌어왔고 중동 건설 노동자들도 파견되었어요.
1950~60년대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본과 기술이 거의 없는 상태였어요. 따라서 경제를 시장 자율에 맡겨두어서는 제대로 성장할 리가 만무했죠. 특히,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회 기반 시설(도로, 전력, 항만 등)이 필수적이었는데 이런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수익이 발생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 민간 기업이 쉽게 나설 수 없는 분야였어요.
한 마디로 해서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충분했고,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했죠. 당시 금융 생태계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단어가 있어요.
🕹️ 정부가 말아주는 금융
바로 관치금융이에요.
관치금융(官治金融): 정부가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자금 흐름을 통제하는 방식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자금을 분배하는 것이죠.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니 그거 공산주의 아냐?!"라고 생각하며 기겁을 하겠지만 경제 성장 초반에는 상당히 도움이 돼요. 왜냐하면:
- 👮 돈 좀 빌려주세요: 민간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기업들이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정부가 나서서 돈의 흐름에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했어요.
- ➕ 원 플러스 원: 앞서 말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등 나라가 산업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맞춰 금융도 주도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어요.
1970년대까지 은행들은 대부분 국영은행이었고 1980년대까지도 대출 금리를 정부가 직접 결정했죠! 하지만,,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정부의 획일적인 정책보다는 개개인의 창의력과 혁신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족쇄로 작용해요. '한강의 기적'으로 궤도에 오른 우리나라는 90년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정부 중심의 정책이 최선이 아니게 되었어요. 그렇게 서서히 빛을 잃어가던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전부터 이미 경제성장률이 서서히 낮아지게 되었죠.
게다가 관치금융의 최대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부패의 문제죠.
우리나라는 강력한 국가가 금융자본을 통제하는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을 펼쳤어요. 이에 따라 기업은 어떻게든 정권의 눈에 들기 위해 정치 자금을 대주었고 독재 정권은 이에 맞춰 기업을 밀어주었죠.
기업이 신용도가 높다거나, 기막힌 기술을 개발해서 장래가 유망하다거나,, 그런 것보다도 정권의 눈에 드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1964년 8월 기준, 전체 은행 대출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선택받은 소수의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8%에 달했죠.
그러던 어느 날,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상황은 역전되었어요. 국가의 힘이 약해진 것이죠! 게다가 '선거'라는 것을 하게 되며 정치세력이 필요한 자금은 더욱 늘어났어요. 국가보다 기업이 우위에 서게 된 것인데,, 이제 더 이상 독재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부패 문제는 끝난 것일까요?
하하,, 절대 아니죠. 이제는 반대로 기업들이 나서서 정치권을 공략하기 시작했어요. 과거에는 "제발 우리 기업 좀 잘 봐주세요! 🥺"라고 싹싹 빌면서 정치자금을 건넸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너네 말이야, 우리 기업 입맛에 맞게 정책 펼쳐야 돼, 안 그러면 돈 안 대준다! 😡"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정치자금을 건네게 된 것이죠. 이러나저러나 부패 문제가 끝나지 않고, 로비를 잘하는 기업들에 돈이 흘러간 것은 매한가지네요 ㅇㅅㅇ ㅠ
재벌들이 부담한 정치자금을 논문에서는 'Quasi-Taxes' 그러니까 '준조세(사실상의 세금)'로 표현한 것이 참 재밌네요. 로비가 중요한 만큼 이 준조세는 엄~~청나게 컸는데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은 벌어들인 이익의 20~40%을 로비 자금으로 지출했고, 한화나 금호 같은 기업은 벌어들인 이익보다 더 큰 액수를 로비 자금을 지출했어요 ㅇㅅㅇ!!
너무 과한 거 아닐까요? 하지만~ 이것은 상당히 남는 장사였다는 점~
정부 눈에만 들면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쉬워서 자본 대비 부채 비율이 엄청나게 컸죠! 대출 잘 받는 거야 그렇다 쳐요. 그런데 이렇게 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기업이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네 않습니다 😄 정부가 살려주거든요!
중간 정리를 하자면,
- 기업들은 정부의 눈에 들어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아 무작정 규모를 키웠고,
- 생산성과 수익성을 올리기보다는 로비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고,
- 낮은 이자로 대출받은 돈을 엉뚱한 부동산 투기에도 사용했어요.
아이참, 모자란 돈은 추가로 사채까지 써서 대출을 받았는데 금리가 무려 40~50%에 달했죠. 당시는 일반 은행 예금 금리도 30%에 달할 정도였으니 대출 금리는 이보다 한참 높은 게 당연했어요.
이렇게 방탕하게 운영을 하는 기업이 건전하게 운영될 리는 없겠죠. 결국 1970년대에는 이를 버티지 못한 기업들이 속출했고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마법🪄(?)을 사용했는데 이름하여,,
🧊 빚 갚는 거 얼음~~~~!!!!
"8·3 사채동결조치" 되시겠습니다~
기업들이 사채로 힘겨워하니 모든 사채들을 동결(!) 시켜버리고 월 이자 1.35%(연리로 16% 정도)로 변신하게 되었어요. 당시 기업들이 평균적인 월 이자가 3.84%였으니 거의 1/3가 된 셈이죠. 바로 갚는 것도 아니에요. 3년 동안은 안 갚아도 되고 이후 5년 동안 차근차근 갚으면 됐죠. 당근 이 조치 덕분에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은 아주 높아졌어요! 부채비율이 1971년 394%에서 1972년 288%로 떨어지고(여전히 높긴 하지만ㅎ), 성장률은 1972년 6.5%에서 1973년 14.8%로 엄청나게 올랐죠!
이 말도 안 되는 반시장적인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 이들은 앉은 자리에서 채권이 반 토막 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어요. 게다가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는데,,
🏢 기업: 앞으로도 돈 많이 빌려도 나라가 살려주겠네~
🏦 은행: 아무한테나 돈을 빌려줘도 나라가 기업을 살려주겠네~ (사채들이 동결됐다는 것이지 은행이 빌려준 채권은 원래대로 상환)
과도한 부채를 지게 된 기업은 본인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지만 이를 회피했어요. 빚이 너무 많아서 "8·3 사채동결조치"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로 기업은 예전보다 더 방탕하게 돈을 빌리게 되었고, 은행은 예전보다 더 방탕하게 돈을 빌려주게 되었으니 부채의 질은 더 나빠졌어요. 또한 사금융을 양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법안을 통과하는데, 이로 인해 제2금융권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정직하게 돈을 빌리고, 돈을 갚고, 사업을 할까요? 이 환장의 콜라보 속에서 광란의 '한강의 기적' 열차는 조금씩 재앙을 잉태하게 되니,,
(2부에 계속)
[팜팜이의 요점정리🥰]
- 팜팜이의 돌잔치와 겹쳤던 IMF 외환위기는 달러로 된 빚을 갚지 못할 위기에 처하고,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발생했어요. 📉 부족한 달러를 IMF, 세계은행, 선진국 등으로부터 빌렸고 IMF의 요청에 의해 고금리 유지, 긴축 재정 정책, 구조조정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온 국민이 달러 빚을 갚기 위해 단합했어요.
- IMF 외환위기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특유의 '관치금융'을 알아야 해요. 이는 정부가 직접 돈의 흐름을 통제하는 방식인데, 6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급속한 성장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 모든 것을 지휘하는 필요악이었어요. 🚀 부작용이 많았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어요.
- 하지만 기업들은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정부의 눈에 들기 위해 정치 자금을 대는 데 몰두했고, 이 경쟁(?)에서 이긴 소수의 대기업 재벌들은 어마어마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어요.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만 갔고, 생산성이 낮은 쪽으로만 자금이 사용되면서 기업들의 기초체력은 꾸준히 약해져만 갔어요. 🤪
[참고 자료]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패corruption"와 "금전정치money politics" 덕분?
수혜국서 공여국으로..숫자로 본 한국원조(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111128073651043
금융자원 동원을 통한 경제성장→8·3 사채동결조치→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https://joohyeon.com/169
8·3 사채 동결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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